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리차드 포스터의 돈,섹스,권력2
    목회참고자료/기독교 도서 2021. 11. 14. 22:44

    2부 섹스

    영성과 성

    인류는 Imago Dei(이마고 데이),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 우리 인간의 성, 곧 남성과 여성은 참된 인간성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사랑을 나누는 능력인 성적인 특성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른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타락하기 전 아담과 하와는 성이 그들의 온 삶으로 연합되어 완전함이 있었기에 경쟁이나 우월 의식이나 개인주의나 부끄러움이 없이 상호 의존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타락한 이후에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인간성이 격하되고 관계성이 파괴되었다.

     

    예수는 성이 너무나도 선하고 고상하고 거룩한 것이어서 값싸게 취급될 수 없는 것임을 아셨다. 그래서 예수는 음욕을 정죄하신 것이다. 음욕은 관계성을 거부하고, 그릇된 성을 창출한다. 음욕은 상대방을 대상이나 물건과 같이 비인격적 존재로 바꾸어 버리고, 성을 창조시의 가치보다 못하게 값싸게 만들어 버린다.

    바울은 결혼을 그리스도와 교회사이의 계약관계에 비유한다. 그는 독신생활에 관해 호의적으로 대변할 뿐만 아니라, 결혼을 인정하고 상호간의 성적 이행을 권면한다. 그것은 영적인 삶이 우리의 성을 풍성하게 하며 방향을 제시하고, 우리의 성은 우리의 영성에 현세적인 완전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성의 왜곡된 형태로는 첫째, 외설이 있다. 이것은 성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재미없고 진부한 것으로, 속된 것과 싸구려로 만들어 버림으로 현실과 괴리된 환상의 세계를 그려낸다. 둘째는 음욕으로서 이것은 일상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나 스치듯 지나가는 생각까지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끓어오르는 성적 초조감에 애태우며 지내는 상태이다. 음욕은 탈선이며 통제할 수 없는 뒤틀려 버린 성적 충동이다. 셋째는 가학적 변태성욕이나 피학대 음란증이다. 이것은 변질되어 강제추행이나 살인에까지 이르게 하기도 한다. 넷째는 남녀차별이다. 이것은 한편이 마음먹은 대로 지배하고 통제하며 소유하려는 것이다. 여성을 열등하게 보는 시각도 이러한 남녀차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경은 동성애가 하나님께서 애초에 정해주신 패턴의 왜곡이라는 점을 시종일관 보여준다.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못한 것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우리는 기혼자가 혼외정사에 관하여 단호하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기준이 있듯이 동성애에 대하여 신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지침이 필요하다. 우리는 성생활에 대한 한계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며 하나님이 정해주신 그 한계를 지나치게 되면 성은 파괴적이 된다.

     

    독신생활과 성

    성적인 결합은 육체적, 정서적, 정신적인 결합이다. 성관계는 삶을 연합시키는 행위로서 남녀의 인격적인 만남이고 영혼의 깊은 곳을 어루어 만지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혼외정사가 본질적인 범법행위이듯이 독신자의 성교에 대해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하게 금지를 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독신자들은 인격적인 사랑을 주고받으며, 정서적 성취를 맛보고, 자신들의 성적인 느낌을 스스로 통제함으로 자신을 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우리는 성감을 다스려야지 성감이 우리를 다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격노한 감정이 일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연합에 대한 의도 없이 맺어진 육체적 결합은 심령에 큰 상처를 입히는 행위이다. 50년간 선교사로 일했던 78세의 한 할머니는 밤낮으로 두려움에 떨었는데 상담을 해본 결과 16세 때 한 청년과의 사이에서 애정행각이 있었음을 생애 처음 시인하게 되었다. 60년 동안 할머니는 심령에 깊은 상처를 품고 살았던 것이다.

     

    흥분된 감정이 어떤 사람을 취하고자 마음먹을 때, 즉 매혹이 음모로 바뀌는 순간, 성적인 흥분상태에서 영적 간음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음욕은 길들여지지 않는 소유하고자 하는 과도한 성적 열정이며 성적인 공상을 통해 경험하는 일상적인 성 의식과는 다른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성적 환상을 음욕과 동일시하여 스스로를 정죄하는 무력감에 빠지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수음은 그 자체가 그릇된 것은 아니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경험이다. 수음은 수많은 청소년들의 육체적 정서적 사회적 성숙의 과정에서의 불균형을 보상하며 건전한 성적 활로를 열어주는 면도 있다. 하지만 성욕은 또한 통제될 필요가 있다.

    수음을 통해 성적 환상에 빠지고 그것에 집착하여 강제로 빠져들게 되면 절망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수음행위에 사로잡히게 되면 될수록 더욱 우상화되는 것이다.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수음행위는 자신감과 자존감에 큰 상처를 주고 우리로 낙담하게 하므로 경계해야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애정을 표현하려는 열정을 잘 통제해야 한다. 서로의 애정을 표현하는 다양한 행위들은 성교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 개방성을 지녀야 한다. 육체적인 친밀도가 상승하는 만큼 상호신뢰감을 높여 가는 것이 좋다.

     

    결혼과 성

    일반적으로 결혼에 있어서 중요한 기초는 낭만적인 사랑과 성적인 사랑이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에 있어서는 이 두 가지가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부르심과 소명이라는 문제이다. 결혼을 통하여 이웃과 신앙공동체 모두의 행복을 위하고, 하나님 나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지, 장애가 되는지를 고려할 일이다. 또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그리스도의 제자직에 보다 충실할 수 있는가와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에 이바지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둘이 하나로 기능하는 실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낭만적 사랑은 언젠가 식기 마련이다. 결혼이라는 한 몸의 실재를 체험함으로 우리는 낭만적 사랑을 이겨낼 수 있다. 결혼서약은 타인과의 평생의 교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생활에는 우리의 최고 수준의 노력이 요구된다.

     

    결혼한 이에게 성은 감미로운 경험이요 축복된 은사이다. 서로의 관계를 향상시키고 만족을 주는 일은 무엇이든지 주 안에서 자유롭다. 그런데 성생활에 싫증을 느끼는 이유는 한 몸을 이루는 인격의 연합이라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도전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성장하면 성적으로도 친밀해지는 것이다.

     

    결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은 영원한 한 몸의 실재가 되게 하는 데 있으므로 나뉠 수 없다. 하지만 연약한 여성들이 악한 남성들로부터 보호받도록 이혼을 허락하는 것이다. 1세기 당시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기 아내를 내어버리는 남자는 그녀를 간음하게 하는 자라고 예수께서 질타하신 것은 쫓겨난 여인이 살아갈 수 있는 당시의 유일한 방법은 거리에서 몸을 파는 직업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의 지속이 이혼보다 현저히 파괴적일 때에는 종지부를 찍어야 하지만 내어버려서는 안 된다. 적절한 재산 분배로 살 방도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는 예수의 말은 재혼을 반대하는 의미가 아니라 남녀간의 차별을 경계하는 말이다. 1세기 당시의 문화적 상황에서 여성을 마치 가축을 사고 팔 듯이 하고,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는 남성들의 우월적 성차별의식과 파괴적 공격적 태도를 지적하신 것이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대하실 때에도 이혼에 관하여 사실만 진술하고 문자적으로는 아무 정죄도 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러한 이혼에 관하여 그녀는 할 말이 없었고 다만 다섯 번이나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재혼에 대하여 간음이라 하신 것은 남자가 여자를 대하는 그러한 모욕적인 태도를 두고 하신 말씀이며, 아내를 버리지 말고, 잘못되어 손상을 입은 결혼관계를 회복하라는 말씀이다.

     

    정절에의 서약

    남녀노소, 기혼, 미혼을 막론하고 모든 신자들은 자신의 성관계에 있어서 정절의 삶에로 부름을 받았다. 정절은 우리의 소명에 대한 충성을 의미한다. 정절은 육체적 성관계를 결혼서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통로로만 가져야함을 의미한다. 정절은 서로의 행복과 성장에 대한 책임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절은 상호성을 의미한다. 정절은 서로간의 완전한 정직을 의미한다. 정절은 영적인 삶을 위한 내면 세계를 함께 탐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성은 여러 가지 다양한 국면을 지니고 있다. 성교는 그 중 하나인데, 그 의미가 영원하므로 미혼자들은 결혼하기 전까지 어떤 경우에도 참아야 한다. 성욕은 공기, , 음식과 같은 절대적 필요(Need)가 아니라 사람의 원하는 바(Want)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통제할 수 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며 부활하게 될 것으로 영원한 가치로 충만하다. 문란한 성생활은 한 몸의 원리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림으로 몸의 거룩한 면을 상하게 한다. 친밀하고 깊은 사랑의 관계가 성교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 삶의 교제와 대화, 만지거나 안거나 쓰다듬어주는 접촉과 같은 의사소통만으로도 친밀함은 공고해질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정절은 계약이며 약속이다. 사랑과 충성과 신실함에 대한 맹세이다. 결혼한 이들에게 있어서 정절은 첫째, 일부일처제를 의미한다. 둘째, 사랑과 충성에 대한 평생의 맹세를 의미한다. 셋째, 그리스도께 대한 경외심에서 나오는 상호복종을 의미한다. 넷째, 결혼의 약속 밖에 있는 성행위를 명백히 금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섯째, 결혼서약 속에 내재하는 성적 자유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향한, 그리스도가 교회를 향한 끈질긴 사랑과 신실함에서 우리는 교회의 정절의 의미를 발견한다. 교회는 우선 기도와 영적인 방향 제시의 사역에 부름 받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결혼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할 임무가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결혼의 성공과 그 강건함을 관장하기 위한 책임이 있다.

     

    신체불능자라도 자기 배우자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 중환자도 서로의 고리가 더 단단해 지고 진정한 가치를 깨우치는 친밀한 애정의 표시인 부부생활이 필요하다. 노인들도 복지시설과 같은 곳에 부부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재혼을 격려해 주어야 한다. 정신지체자들도 성교육을 받아야하고 유전적인 경우에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불임시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들도 정상인 이상으로 사랑의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것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