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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클카드/ 땅에 쓰신 글씨
    목회참고자료/기독교 도서 2021. 11. 15. 00:18

    그리스도가 우리 세상 속으로 들어오셨다. 천상의 존재인 창조주가 땅의 존재가 되신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창작이라는 우리의 인간적 노력과 결합될 때 그 행위는 더욱 풍성하고 다양한 의사 소통의 형태를 빚어낸다. 수세기에 걸쳐 예술가들은 창작을 통해 초월적인 경지로 들어가려 했다. 논의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예술 언어는 믿음에서 탄생한 언어이다 다시 말해, 모든 예술 형식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바꾸어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화가 조엘 쉬즐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 예술의 본질에 대한 정의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한 신약 성경의 정의와 무척 유사하다고 본다.” 특히 우리가 구원받은 시각을 가지고 임할 때 예술은 글과 그림과 기타 재료들을 사용해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예술의 내용과 형식으로 바꾸는 신앙 행위가 된다.

     

    마이클 카드는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그의 음악과 글은 복음의 소중한 비밀을 우리의 영혼에 속삭인다. 음악가로서의 기량, 그리고 그 사고의 깊이로 인해 그의 표현은 가히 환상적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황홀한 경지에 이르며, 놀라운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혜의 음성에 귀기울이게 된다. 그의 글은 한 올 한 올 정성껏 엮여 창조성이라는 직물을 짜내고 있다. 또한 자신의 주위에도 창조적인 공동체가 생기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몸부림이 드러나 있다. 그의 지혜는 전통적인 신앙에 깊이 뿌리 박힌 것이긴 하지만,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들과 우리가 교회에서 직면하는 도전들에 대처할 지혜를 들려주고 있다.

     

    차 례

    서문

    감사의 글

     

    흙 위에 끄적이신 말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창조로의 부르심

    새 노래로 노래하기

    창조적 상상력의 회복

    그리스도를 향한 새 노래

    창조성의 특징

    귀기울이는 삶의 양식

    부르심은 공동체를 향한 것이다

    그리스도인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편지

    창조성의 가장 위대한 표현

     

    부록 : 창조성 키우기

    참고 문헌

    땅에 쓰신 글씨

    마이클 카드 지음/황병구 옮김

     

     

    흙 위에 끄적이신 말씀

    지금껏 우리는 예수님이 흙 위에 무슨 말씀을 두 번씩이나 끄적이셨는지에 관해 아는 바가 전무하다. 대체로 주석서들도 오랜 세월동안 빗나간 질문만 해 왔다. 무슨 말씀을 쓰셨을지 그 내용만을 계속 알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주석가들은 예수님이 왜 그러셨는지를 질문해야 했음에도, 그걸 깨닫지 못하고 무얼 쓰셨을까만을 질문했던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끄적이신 내용이 아니라 끄적이신 이유였다. 뜻밖의 행동이었다. 모두를 초조하게 했다. 그분만의 창조적 방식이었다.

     

    사실 바리새인들은 간음한 여인에게 화가 난 만큼 예수님께도 화가 나 있었다. 그들은 여인을 성전 뜰로 끌고 와서는 영광스런 가르침을 전하기에 한창이셨던 예수님을 가로막았다. 그 장면은 당신도 알 것이다.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짐짓 예수님을 존경하는 양 바리새인들이 묻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입을 다무셨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대신 몸을 굽혀 성전 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써내려’(kata - 아래로, graphein - 쓰다) 가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의미심장한 침묵을 견디다 못해 질문을 던지며 재촉하고 나섰다. 마침내 예수님이 숙연한 침묵을 깨셨다. 그분은 끄적이신 말씀을 놓아두신 채 똑바로 일어서서 그분의 생애를 온전히 구체화하는 지혜와 긍휼이 농축된 단순한 여덟 단어의 말씀을 던지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러고 나서 다시 흙 위에 무언가를 끄적이셨다.

     

    그날 아침 예수님은 시간 가운데 여백을 창조해내신 것이다. 끄적이신 글의 형태나 심지어 내용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한 순간에 소란이 멈추고 새로운 곳에 이목이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세상이 단지 현존하는 세상만이 아님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유케 되었다. 이 또한 분명 예술이다. 우리가 창조하고 글을 쓰고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될 수 있는 이런 종류의 시간 속 여백이 활짝 열릴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림은 이 혼탁한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온전한 창조 질서를 바라보게 하는 창이 될 수 있다. 음악은 이 지친 인류의 귀가 오래도록 듣기를 갈망했던 그분의 음성을 표현하는 장엄한 메아리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보고 들음을 통해 산출되는 예술인 것이다.

     

    이 책은 다른 이들의 생각을 종합해 놓은 것이 아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쓸 때 내 바람이 그것이었다. 나는 창조성과 상상력에 대한 문헌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난 그들이 기울인 창조적인 노력 하나 하나에 내내 감사의 마음이 넘쳤다. 난 그들의 주요한 논지들을 종합해 내 자신만의 웅장한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일종의 방법론이나 창조성을 고무해주는류의 책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들이 일반 서적 중에 많으나, 테크닉적인 면만 가득할 뿐 일부 유용한 논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독자들의 시간만 빼앗고 있다. 하지만 특별히 나라고 해서 이 신비한 과정을 단번에 몇 가지 단계로 응축해 낼 수는 없다. 물론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창조성의 진리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존재하지만, 그 깊이는 우리의 인식 범위를 넘어선다.

    내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비전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통로로서 창조적인 과정, 바로 그 창조 과정에 대한 그리스도 중심의 비전을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먼저, 성경에 나타난 창조성과 더불어 창조적 부르심에 순종한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간략히 살펴보려고 한다. 그런 다음 초대교회의 찬송시(2:611)를 통해 그리스도 중심의 창조성이 육신을 입고 구현된 형상이 어떤 것인지 발견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발견된 개념들을 여러분의 삶과 나의 삶에, 그리고 우리의 경건 생활과 신앙 공동체에 적용하기를 바란다.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은, 창 위에 낀 성에 각양 무늬들로 창틀을 채우네. 움직임으로 간직되고 타오름으로 얼어붙네. 그 무늬들 안에 그분의 이름이 있는가? 우리는 왜 아름다움을 갈망하는가?”

    - 짐 크로거트(Jim Croegaert)의 노랫말 중에서

     

    아름다움이 빚어내는 반응

    어젯밤 하늘에서 우주쇼가 펼쳐졌다. 큰아들 윌과 나는 몇 시간 안에 개기월식이 진행된다는 것을 천문력을 통해 알고 있었다. 진짜로 몇 시간 뒤 지구의 그림자가 마마 자국을 한 달을 뒤덮기 시작했고, 그 질투 가득한 얼굴은 이내 검붉게 변했다. 게다가 달 바로 아래에서는 화성이 특유의 붉은 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고는 대미를 장식하듯 유성이 한 개도 아니고 두 개씩이나 반짝이는 꼬리를 남기며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윌은 이런 우주쇼를 볼 때마다 , 하나님 감사해요!”라고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곤 한다. 우리는 마음속에서 뭔가를 애써 갈망하는데, 이 위엄있는 아름다움 앞에서도 그 갈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이것은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 그 이상의 것이다. 이는 동시에 사랑과 용납을 향한 갈망이자, 좀더 시간을 두고 생각한다면 바로 하나님을 향한 갈망임을 깨닫게 된다. ‘그분은 아름다우신 분이기에‘,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이유이다.

     

    당신은 자신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런 각별한 방식으로 깨달은 적이 있는가? 우리는 그분의 아름다움을 깊이 생각하는 일이 드물고, 더군다나 그 아름다움을 앙망하는데는 더 인색하다. 신학이 이를 개략적으로나마 다루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엄연히 성경적인 사실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시종일관 자신이 아름다우신 존재이며 그로 인해 찬양받으셔야 함을 알리셨다. 하나님은 아름다우시다. 그분의 아름다움은 그 아름다움을 표현해 낼 마땅한 반응을 요구한다. 그 반응이 진정한 예배이며, 예술인 것이다. 이는 빌 레인이 내게 여러 해 전에 말해 주었던 것이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것이다.” 그건 마치 연애하는 것과 같다. 내가 아내 수잔을 처음 보았을 때, 내 안의 모든 것이 그녀에게 반응하길 원했다. 감성적인 면, 영적인 면, 관계적인 면, 특별히 육체적인 면까지 포함해서 그 모든 영역에서 말이다. 나는 반응했다. 바로 이것이 예배다. 예배가 본질상 하나의 반응이라는 점에서 창조성은 예배이다. 그러기에 노래하고 글을 쓴다. 그러고는 음악을 사용해서, 침묵으로, 사랑하면서, 감사 가운데 섬김의 도구인 대야와 수건을 들고 반응한다. 이것이 내가 진정 사모하는 분을 향한 낭만적인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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